2024년 회고

Retrospect
2024-12-22

들어가며

2024년은 유난히 시간이 빨리 간 것 같다. 이상한 것은, 시간이 빨리 갔다면 24년 초가 엊그제처럼 가깝게 느껴져야 할 텐데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상반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고, 굉장히 먼 과거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나는 먼 거리를 아주 빨리 달려온 것이 아닐까?


이직

2024년, 내 삶의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면 역시 이직일 것 같다.

2023년 8월부터 시작된 포자랩스 생활을 2024년 5월에 마무리하고, 6월부터는 타이드스퀘어에서 일하고 있다.

포자랩스에서 1년도 못 채우고 이직하게 되어, 내 이력서는 첫 회사를 제외하고 전부 1년 이하 경력으로 채워졌다. '왜 이렇게 자주 이직하냐', '무슨 문제가 있었냐' 등의 질문을 자주 받는데, 나름대로 합리적인 퇴사 사유가 있었다. 타이드스퀘어 면접에서도 질문받아 자세히 설명하고 납득시킬 수 있었다. 다만, 나를 페이퍼로만 접하는 사람들까지 납득시키지 못함이 아쉬울 따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면접 때 퇴사 관련 질문하셨던 C레벨 두 분은 모두 퇴사하셨다. 면접 경험이 좋았었는데, 대화도 거의 못 해보고 보내드려 아쉽다.

타이드스퀘어의 생활은 굳이 따지자면 스타트업보다 중견, 대기업의 느낌이 강하다. '잡담이 경쟁력'이라며 주변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인사이트를 얻는다거나, 기획과 디자인까지 넘나들며 기능을 구현하거나, 협업하는 분의 자리로 튀어가서 빠르게 논의한다든가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이런 점이 꽤 아쉽다. 포자랩스에서 퇴사할 때 누군가 물어본 것 같다. 이제 그런 경험은 포기하는 거냐고,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아쉬운 것보다 만족스러운 게 훨씬 크다. 일단 함께 일하는 프론트엔드 팀의 기술 역량이 매우 뛰어나다. 배울 게 정말 많다. 아니, 이렇게 역량이 뛰어난 팀이 왜 유명하지 않은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가끔 커뮤니티에서 '팀에서 내가 가장 개발 잘하기 vs 팀에서 내가 가장 개발 못 하기'라는 주제로 이야기가 나오곤 하는데, 딱 후자의 상황이다. 배울 게 많아서 좋은데, 팀에 짐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어서 도메인 지식도 쌓고, 실력도 성장해서 머리만 7개 달린 팀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이직으로 인해 지하철 출퇴근을 경험하고 있다. 도보로 통학, 통근이 가능한 거리에서 자취해 온 터라 운 좋으면 45분, 운 나쁘면 1시간은 꽤 힘이 든다. 이 시간에 책을 읽을까 했는데, 앉아서 출근하는 날이 거의 없어 여의치가 않다. 그래도 퇴근길 수인분당선은 가끔 앉아서 갈 수 있으니 2025년의 목표에 통근 독서를 추가할 생각이다.


열등감

회사에 만족하면서도 네임벨류가 부족하다는 점이 못내 아쉽다. 주변에서 빅테크 이직 소식을 들으면 '나는 왜 저 회사에 못 갈까?'라는 생각이 들고, 자꾸 나와 남을 비교하게 된다. 비교하는 것 자체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절한 동기부여가 되고, 내 역량 강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다를 수도 있다. 포지션이 달라 비교할 대상이 아닐 수도 있고, 출발선이 달라 적절한 비교군이 아닐 수도 있다. 내가 비교해야 할 것은 과거의 나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나와 비교하면 지금의 나는 어떤지, 미래의 나는 어떻게 되길 바라는지 고민하며 열심히 살아갈 따름이다. 이렇게 적어도 열등감이 아예 사라지진 않겠지만, 우리는 모두 이런 마음을 한편에 쌓아두고 살아가기에 딱히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제 이걸 잘 태워서 연료로 사용해야지.


독서

2024년에는 북 스터디를 많이 했다. 디프만에서 UXUI 북 스터디를 만들었고, 무한도전이라는 스터디에서 세 권의 개발 관련 서적을 읽었다.

가장 배움이 컸던 책은 『실용주의 프로그래머』였다. 마인드 셋에 관련된 책인 줄 알았는데, 막상 읽어보니 기술적인 내용이 굉장히 많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태껏 들었던 '테스트하기 좋은 코드'라는 표현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었다. 물론 더 고민해야겠지만.

북 스터디에서 진행한 책은 아닌데, 『Tidy First?』를 읽고 생각해 볼거리가 많아서 좋았다. 이 얇은 책에 공감이 가는 내용이 왜 이렇게 많은지, 간만에 재미있게 읽었다. 점심을 먹으며 리드님께 책에 좋은 내용이 많다고 말씀드렸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코드 정리 PR을 올리셨다. 'Tidy First?'라는 코멘트가 있길래 좋은 책을 추천해 드린 것 같아 은근히 뿌듯했다.

지식을 전달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올해 들어서는 책이 참 좋은 방법이라고 느꼈다. 영상 강의도 좋긴 하지만, 책을 끝냈을 때의 성취감이 영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리고 명저로 불리는 책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느꼈고, 동물이 그려진 오라일리 책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책은 아닐 수 있다는 것도 느꼈다.


엑셀러레이터

토스에서 진행한 액셀러레이터 1기에 참여했다. 매주 하나씩 주제가 주어지고, 그것에 맞게 자신의 코드를 리팩토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멘토 1명과 멘티 3명이 조를 이루는데, 높은 경쟁률을 뚫고 같은 조에 구성된 멘티 3명이 모두 무한도전 스터디원이라는 게 확률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싶다.

하나의 주제를 깊게 고민해 볼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유익했다고 생각한다. 멘토님이 곧장 정답을 알려주시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해답을 찾아가며 중간중간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매주 오프라인 모임을 하면서 멘토님의 생각을 듣고, 그걸 북 스터디에서 읽은 책 내용과 함께 이해하면서 조금씩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블로그

블로그 서비스는 내 입맛대로 커스텀이 어렵고, 오픈소스 블로그 템플릿은 심미성이 아쉬웠다. 그래서 직접 만들었다. 정말 시간이 남을 때만 작업했고, 상반기에 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

내 취향대로 템플릿을 만드는 과정에서 UI를 몇 번이나 갈아엎었는지 모르겠다. 자연스러운 벤또 그리드 형태의 UI를 고생해서 만들었는데, 썸네일 작업이 너무 힘들 것 같고 시인성이 좋지 않아 갈아엎고 카드 리스트로 바꿨을 때가 가장 아쉬웠다. 화려한 시각적 효과, 심미성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UX를 저해하지 않는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이 어려운 것 같다. 이건 디자인 역량이 부족해서일까?

경력이 생기고 나서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에 부담이 생긴다. 너무 쉬운 글이나 단순히 라이브러리 소개와 같은 글을 작성하면 내 역량이 부족해 보일까 걱정된다. 확실히 역량을 드러낼 수 있는 글만 작성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인지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굳이 그럴 필요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은 다르다. 다행인 것은, 회사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좋은 주제에 관해 토론한다는 점이다. 사실상 슬랙에서 나눈 대화만 살짝 재구성해도 글 하나를 쓸 수 있을 정도다. 다만 내가 그 대화를 소화하는 데에 시간이 걸려서 글로 발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나저나 블로그에 문제가 있는데, 서치 콘솔에 등록이 안 된다는 것이다. 사이트맵도 있고, URL 검사도 정상적으로 되는데 어째서 크롤러가 인식을 못 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 구체적인 원인을 파악하지 못해서 해결도 어려운 상황이다. 도메인을 바꾸고, 개발도 다시 할지 생각 중이다.

다시 개발하면서 기능을 좀 추가해 볼 생각인데, 우선 에디터를 포함하여 웹에서 곧바로 글을 작성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IDE에서 작성하고 웹에서 확인하는 과정이 너무 번거롭게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인증인가가 붙고, DB도 붙고…. 조금 크기가 커질 수 있겠지만, 올 상반기는 블로그 2.0에 시간을 투자하여 잘 만든 블로그 템플릿을 배포할 생각이다.


소비

2024년은 유독 가전, 가구를 많이 구매한 것 같다.

  • 허먼밀러 직구
  • 아이폰 16
  • 샤오미 스탠드 선풍기
  • 디베아 청소기
  • 샤오미 커피머신
  • 보스 블루투스 스피커
  • 아이패드 미니

청소기, 선풍기는 갑자기 고장나버려서 어쩔 수 없이 구매했다. MD 경력을 살려 꼼꼼하게 비교하고 구매해서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특히, 청소기를 무선으로 바꾼 것이 삶의 질을 많이 개선해줬다. 기존 청소기가 전선이 짧다보니 주방까지 닿지 않아 아쉬웠는데, 이제는 편하게 청소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폰 16은 슬슬 바꿀 때가 된 아이폰 12를 보상판매하고 구매했는데, 솔직히 외적으로는 뭐가 바뀐 건지는 잘 모르겠다. 버벅이던 아이폰이 다시 빠릿빠릿 해져서 기분이 좋다.

허먼밀러와 커피머신은 재택을 위한 회심의 소비였는데, 갑작스럽게 재택이 폐지되는 바람에 사용 빈도가 줄었다. 특히 허먼밀러는 100만원이 넘는 큰 금액을 현금으로 지불했는데, 침대보다 덜 사용해서 아쉽다. 블루투스 스피커도 재택하면서 음악 틀어놓을 용도였는데, 이젠 자기 전 유튜브용으로 제 몫을 해주고 있다.

아이패드 미니는 포자랩스의 현금성 복지로 금액을 지원받아 구매했다. 애플케어까지 야무지게 적용해서 아주 만족스럽다. 어디서든 책을 읽기 위해서 구매했는데, 북 스터디와 시너지가 아주 좋았다. 2025년에도 이북 리더로 열심히 일해주길 바란다.

이 외에도 책을 많이 구매했고, 먹는 데에 아끼지 않아서 식비가 많이 나왔다.

소비는 언제든 즐겁다. 월급날 빠져나가는 카드값을 보면 속이 쓰리지만, 원래 소중한 것을 낭비할 때 행복하다는 말이 있듯이 나의 행복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해두고 싶다. 그리고 소비가 대부분 합리적이지 않나? 아닌가?


여행

올해는 일본을 2회 다녀왔다. 오사카-교토, 그리고 다카마쓰.

오사카-교토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도쿄가 훨씬 볼거리가 많고, 맛집도 많았던 것 같다. 누군가 일본의 도시 문화를 묻는다면 고개를 들어 도쿄타워를 보게 하라.

의외로 소도시인 다카마쓰가 좋았다. 사누끼 우동의 발상지로, 우동 가게가 즐비한 이곳은 일반적인 여행 루틴과 다르게 우동 먹기, 섬 투어하기가 전부인 곳이다. 쇼핑이 대부분인 도시 여행과 다르게 쇼핑할 곳이 아예 없다.

사실 나는 일본에 가면 그곳에서만 살 수 있는 물건을 꼭 구매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그래서 일본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액세서리나 일본풍의 소품 등을 구매하곤 했는데, 주로 유명한 패션 브랜드의 굿즈가 많았다. 여행을 즐긴다기보다는 여행에서 뭘 샀는지를 즐기는 것에 가까웠는데, 다카마쓰에서 소비보다 여행 그 자체를 즐긴 것 같아서 좋았다. 앞으로도 소도시 여행을 눈여겨 볼 생각이다.


미식

올해는 먹는 데 돈을 많이 썼는데, 주로 강남역 갓덴스시, 그리고 사당역 사이집에서 쓴 것 같다. 여자 친구와 퇴근 후 만나는 곳이 강남역과 사당역인데, 이 두 곳은 상당한 번화가이면서도 막상 맛집이 뭐가 있냐고 물어보면 추천할 만한 식당이 마땅치 않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군계일학이라고, 갓덴스시와 사이집은 맛으로는 흠잡을 데 없다고 생각한다.

미식이라고 하고 대중음식점을 말하는 것도 조금 웃기긴 하다. 하지만 미식의 본질은 환경에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돈 없던 학생 시절, 자취방 근처 백반집의 꽉꽉 눌러 담은 공깃밥과 닭곰탕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한 끼였던 것처럼, 어떤 상황에서 누구와 먹느냐가 중요한 게 아닐까.

이 외에도 올해를 돌아보며 여자 친구와 갔던 맛집을 몇 개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링크도 걸어 두었다.

너무 바이럴 된 맛집은 제외했다. 그리고 오마카세도 기념일에 한두 번 가긴 했는데, 그리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적지 않았다.


2025년 목표

  • 상반기: 블로그 2.0 개발하기
  • 하반기: 프로젝트 동아리 참여하기
  • 개인
  • 회사
    • 도메인 지식 부족으로 인한 질문 횟수 줄이기
    • 신규 입사자를 위한 여행 용어 및 개념 정리집 만들기

개인

  • 절약하고 저축하기
    • 월 저축 금액을 월 수익의 50% 이상으로 유지하기
    • 합리적인 소비만 하기(거지방)
  • 근로소득 외 추가 수입원 만들기

나가며

미국의 한 신경학자가 이런 연구를 했다고 한다. 청년, 중장년, 노년의 세 그룹을 만들고, 마음속으로 3분을 센 다음 실제 흘러간 시간과 비교하는 실험이었다. 청년 참가자는 대부분 정확히 시간을 맞췄으나, 60대 이상 참가자는 대부분 더 긴 시간을 3분이라고 말했다. 즉, 실제로 나이가 들면 체감 시간이 더 빨리 흘러간다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새로운 학습이나 보상의 과정에서 도파민을 분비한다. 즉, 외부 자극이 들어오면 이를 해석하려 머리를 굴리고, 이 과정에서 외부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대부분의 자극이 일상화되어 더 이상 도파민이 분비되지 않고, 시간의 흐름도 평소와 같다고 한다.

시간은 금이다. 같은 시간이라도 남들보다 두 배로 살 수 있다면(실제로 두 배는 아니지만) 어떨까.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는 이렇게 말했다.

일정하게 흘러가는 세계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경이로움을 찾아다녀야 한다.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늘 새로운 생각을 하는 사람이 긴 시간을 살 수 있다.

2025년 연말에는 참 풍성하고 알찼던 한 해라고 느낄 수 있도록 충실하게 살아봐야겠다.